Unlearn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AI의 어시스트를 받아 정리한 제 개인 의견을 올려봅니다.
요즘 IT의 글 자체는 좋은 글이고 문제 제기도 유효하지만, 이 글만 읽고 넘어가면 Unlearn이라는 개념이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마음을 열자” 정도의 자기계발 구호로만 남을 것 같아 몇 가지 덧붙입니다.
원래 이 말이 나온 맥락과 상당한 거리가 있고, 그 거리를 인지하지 않으면 실무에 적용할 때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1. 출처부터 정리하면
글에서 인용되는 “21세기의 문맹은 배우고 버리고 다시 배울 줄 모르는 사람” 문장은 앨빈 토플러의 『Future Shock』(1970)으로 통용되지만, 실제 원문에는 이 문장이 없습니다. 토플러가 쓴 것은 "학생들에게 learn-unlearn-relearn을 가르침으로써 교육에 새로운 차원을 더할 수 있다"이고, “내일의 문맹” 부분은 토플러가 인용한 심리학자 허버트 거주오이(Herbert Gerjuoy)의 별개 문장입니다. 거주오이 원문에는 unlearn·relearn이라는 단어조차 없고 "배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두 문장이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합쳐져 지금의 구호가 된 것이고, 이 합성본이 원본을 대체해 인터넷에서 유통되고 있습니다.
2. 진짜 이론적 출처는 다른 사람입니다
조직론에서 Unlearn을 개념으로 정립한 시조는 스웨덴 경영학자 보 헤드버그(Bo Hedberg)의 1981년 논문 "How Organizations Learn and Unlearn"입니다. 헤드버그의 원래 정의는 “학습자가 낡고 오도하는 지식을 의도적으로 폐기하는 과정” 이고, 여기에는 네 가지 조건이 원래부터 박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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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성: 시간이 지나 저절로 잊히는 수동적 망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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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성: 태도가 아니라 식별 가능한 지식·루틴·신념이 폐기 대상입니다. 무엇을 버렸는지 사후에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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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발 조건: 상시적 마인드셋이 아니라, 기존 방식이 현실과 어긋났다는 신호가 왔을 때 작동하는 교정 절차입니다(problem-trigg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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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행위: 개인의 내성이 아니라 조직이 수행하는 공식 절차입니다. 헤드버그의 후속 논문 제목이 "To avoid organizational crises, unlearn"일 정도로 처음부터 경영 활동으로 설계되었습니다.
3. 요즘IT 원고는 이 중 세 가지를 탈락시킵니다
원고의 실천법 세 가지 — “내 업무 기준 돌아보기”, “AI로 프로세스 대체 실험”, “불편함 포착” — 는 모두 독자 한 사람이 혼자 책상 앞에서 수행하는 내성적 활동입니다. 그런데 글의 앞부분 진단은 “보고서 양식”, “코드 리뷰 프로세스”, “결재 라인” 같은 명백한 조직 수준의 병리를 가리킵니다. 진단은 집단의 것이고 처방은 개인의 것인 셈이죠. 이 비대칭이 글의 모호함의 정체이고, 실무자 입장에서 “읽고 나서 뭘 해야 할지 애매한” 감각의 원인입니다. 결재 라인을 줄일 권한이 없는 사람에게 "과거형 확신을 내려놓으세요"라고 말해봐야 조직 병리는 꿈쩍도 안 합니다.
4. 여기서 Lean과의 연결이 드러납니다
원전의 Unlearn은 개인의 깨달음이 아니라 “낡아서 가치를 만들지 못하는 것을 식별해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관리 절차” 입니다. 이 논리 구조는 도요타 생산 시스템의 무다(無駄) 제거, 즉 Lean의 본체와 사실상 동형입니다. Lean의 지도카(문제 감지 시 라인 정지)는 헤드버그의 problem-triggered 조건과 같고, 가치흐름 지도(VSM)는 "무엇을 버렸는지 가리킬 수 있어야 한다"는 구체성 요건을 충족시키는 도구이며, 둘 다 처음부터 경영 시스템으로 설계되었습니다. Lean Startup의 “pivot or persevere” 역시 검증 실패한 가설을 공식 폐기한다는 점에서 Unlearn 루프의 스타트업 버전입니다.
다만 두 개념은 적용 층위가 한 단계 다릅니다. Lean은 가치의 정의가 안정된 상태에서 낡은 실행을 걷어내는 절차이고, Unlearn은 가치의 정의 자체가 낡았을 때 그것을 걷어내는 상위의 절차입니다. AI 도입 국면에서 “좋은 코드 리뷰란 무엇인가”, "좋은 설계 문서란 무엇인가"의 정의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이 후자의 상황이고, 이때는 VSM을 그리기 전에 가치 정의를 다시 쓰는 작업이 먼저 와야 합니다.
5. 그래서 실무 관점에서 드리고 싶은 말
이 글을 읽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다면, "마음을 여는 연습"보다는 버릴 항목 목록을 문서에 적는 작업부터 시작하시기를 권합니다.
"AI 도입 후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우리 팀의 루틴·체크리스트·문서 양식 3가지"를 구체적으로 적고, 그것을 팀 회의에서 공식 폐기하는 결정까지 내려야 Unlearn이 비로소 일어난 것입니다.
적지 않고 선언하지 않으면, 원고 표현대로 “할 일이 두 배가 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원전이 40년 넘게 말해온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버렸다고 가리킬 수 있는 것만이 버려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