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신입 WPF 개발자 진로에 대해서 선배님들께 조언을 부탁드리고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이런 글을 남겨도 될지 고민을 많이 해봤지만, 주변에 이쪽으로 잘 알고 있는 지인들도 없고 같은 C# 개발자들이 모여 있는 이 커뮤니티에서 조언을 구하는 게 가장 좋을 듯 싶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현재 일 하고 있는 회사는 RF(Radio Frequency, 무선 주파수) 분야의 작은 회사입니다. 사실… 제 아주 가까운 친척 중 한 분이 만드신 작은 제조, 공정 회사입니다. 작년에 Java SpringBoot 백엔드 개발자로 1년 정도 일한 후 퇴직하여 취준을 하던 도중 친척분의 제안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친척분이 공학 박사이시고 이 바닥에서 오래 일을 해오셨으며 퇴직할 시점에 사업 아이템을 하나 가지고 주변 동료분들 몇분과 함께 만든 회사입니다. 회사는 이제 3년 정도 지났고 저 포함 약 7~8명 정도 계십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하드웨어 제조, 공정 회사라는 점입니다. RF 분야에서 사용되는 PCB를 제조하는 업체인데, 일 하시는 분들이 모두 베테랑 RF 엔지니어들이십니다. 당연히 하드웨어, 전자전기쪽으로는 배울 게 정말 많은 곳입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쪽으로 희망하는 제게 있어서는 너무 막막한 곳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쪽으로는 기반이 거의 전무합니다. 다만, 작년에 PCB 성능 테스트에 사용되는 WinForms 프로그램을 외주 주고 만든 게 하나 있습니다. 제가 6개월 동안 한 일이 이 WinForms 코드를 분석해서 WPF로 다시 만든 것입니다. 이 작업은 약 3개월 정도 걸렸고 나머지 시간은 그냥 혼자 공부하거나 간단한 노가다 작업(PCB 포장, PCB 테스트, PCB 사포질…)을 수행합니다.(노가다 작업은 한달에 일주일 정도 있으며 나머지 시간에는 따로 시키는 업무가 없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그냥 자율 시간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세요. 프로그램해도 되고 공부해도 되고. 사실 WinForms를 WPF로 바꾸는 프로젝트도 제가 너무 하는 게 없어서 먼저 기획, 설계하여 제안 드린 것이고 위에 분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셔서 진행한 것입니다… WinForms 코드가 객체 지향이 하나도 없는 그냥 소스코드 하나에 다 때려박은 매크로 수준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제가 SQLite 붙이고 조금 더 프로그램, 하나의 어플리케이션 느낌으로 개선했습니다.
말 그대로 자유 시간이 어마무시합니다. 하고 싶은 공부나 프로그래밍 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시키는 게 없습니다(그냥 때 되면 간단한 노가다 작업 몇일… 몸 쓰는 것도 아니어서 안 힘듭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 회사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 : 제가 하는 일이 돈으로 연결이 안 됩니다. WPF 만들고 인프라 만들고 해도… 사실 WinForms 쓰는 거랑 아주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나중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쌓은 기반으로 하여 외주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겠지만 당장에는 돈이 안 됩니다.(새로운 프로젝트 시작은 현재까지 예정에 없습니다…)
- 배울 곳이 없습니다 : 입사 초기에는 WinForms 보고 테스트 시나리오도 정리하고 실제로 코드 분석하고, C# 공부하고 프레임워크 공부하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 기초는 쌓았지만 지금 제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이게 맞는 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 자극이 안 됩니다 : 아무것도 시키지 않습니다.
- 월급이 적습니다 : 솔직히 일 하는 양에 적은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제가 사회에 나가서 더 큰 역할도 하고 영향력도 펼치고 싶고 더 많은 연봉도 받고 싶다는 생각이 큽니다.
- 소프트웨어를 무시합니다 : 전부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이셔서 사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살짝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C#, C++, C 차이도 잘 모르시고 어차피 저한테 프로그래밍 다 똑같다고 그냥 기초만 알면 다 할 수 있다고 하시고… 최근에는 FPGA난 CPLD 도 프로그래밍이라고 지금 배워서 해보라고 하십니다.
- 세상에 조금 더 나가 보고 싶다 : 지금 이 회사에 있으면 너무 편하고 좋지만, 하는 일이 없어 많이 답답합니다. 사회로 나가서 다른 개발자들과 함께 협동하고 더 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더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 깍두기 신세 : 친척분의 도움으로 입사한 회사이므로 제 능력이나 할 수 있는 것들은 인정해주기보다 그냥 깍두기처럼 여겨집니다…
좋았던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자유 시간 속에서 C#과 WPF를 스스로 공부하고 구현해볼 수 있었습니다
- 고급 RF 계측기를 마음껏 다룰 수 있습니다.(5000만원~1억원 가치 계측기 2대)
- 제가 어떤 것이든 직접 계획하고 도전해볼 수 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든지 자율입니다.
-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는 점(스스로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 외에 외부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 전기전자 지식을 여쭤볼 곳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재 이직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쓰다 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선배님들께 여쭙고 싶은 것은, WPF 개발자로서 과연 이곳에서 혼자 성장할 수 있을지, 혹은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것이 좋을지… 그리고 선배님들이었으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은지(?) 입니다…
지금 다니는 제조생산 회사에서 직접 PCB도 만지고 전기전자쪽 공부도 해보고 하면서 단순히 사무직쪽보다 공장, 생산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강하게 들어 MES나 자동화 장비, 반도체 장비 개발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MES보다 실제 장비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개발(FA) 쪽이 더 끌리긴 합니다. 프로그램으로 직접 설비나 장비를 제어하는 게 제 취향이고 적성에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연봉도 좋다고 하고, 해외 출장도 전 좋습니다. 단, 연애나 결혼이 좀 걸리긴 합니다… (FA 개발자 분들이 계시면 많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안정적으로 지금 회사에 남아 그냥 조금 더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직접 해본다든지 WPF나 각종 프로그래밍 기술을 쌓아본다든지 하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사실 정말 편하고 스트레스가 없는 직장입니다. 그리고 가까운 친척분이 정말 잘 챙겨주시기도 하세요. 엔지니어답게 조금 보수적이긴 하셔서 저보고 계속 FPGA나 회로 설계 준비하라고 하시긴 하지만요… 이곳에 그대로 머문다고 했을 때 가장 걸리는 것은 연봉과 그리고 경력입니다. 지금 사실 실무에서 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개발자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물경력이 될까봐 이게 가장 무섭습니다.
저는 문과계열 비전공자입니다. 고등학교 때 나름(?) 공부해서 인서울 4년제 경영학과 나오긴 했지만, 이 쪽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전공에 대한 컴플렉스도 있어 사실 이렇게 모험을 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제 나이도 29살이고, 다른 친구들은 안정적으로 슬슬 자리잡아가는데 저만 아직도 이렇게 방황하는 기분이 들어 많이 우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 제 역량이 100퍼센트 발휘할 수 없는 곳에서 일하는 기분이 듭니다…
어쩌다보니 하나의 신세한탄 글이 되었는데… 뭔가 이야기할 데도 많이 없고 많은 개발자분들이 보시기엔 제 상황이 어떤지 한번 조언을 들어보고 싶어 이렇게 긴 글을 남깁니다. 긴 글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